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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춘천 남양주여행]남양주 마재 정약용 생가터 및 묘소등 다산 유적지 탐방-(2/2)
글쓴이 손상태
날짜 2019-11-16 [23:04] count : 16

 









[춘천 남양주여행]남양주 마재 정약용 생가터 및 묘소등 다산 유적지 탐방-(2/2)

(2019/11/05 현재)


2019년11월5일 과천향교 임원연수차 탐방한 춘천 남양주 여행
탐방지중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있는 다산정약용선생의 유적지 탐방
전경 입니다. 다산정약용선생은 이 마을에서 태어나 조선의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결국은 오랜유배생활 끝에 고향인 이곳에서 숨을 거두었다. 유배생활 동안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많은 저서를 남겨 조선 후기 최고의 실학자로 평가 받고 있다.

유적지 내에는 그의 생가인 여유당(與猶堂)과 선생의 묘, 다산문화관과 다산기념관이
있다. 다산문화관에는 많은 저서들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있으며, 다산기념관에는
수원성 축조 과정에 쓰였던 거중기, 녹로 그리고 유배생활을 했던 강진 다산초당의
축소 모형 등을 전시하고 있다.

조선 후기 학자 겸 문신. 사실적이며 애국적인 많은 작품을 남겼고, 한국의 역사
· 지리 등에도 특별한 관심을 보여 주체적 사관을 제시했으며, 합리주의적 과학 정신은
서학을 통해 서양의 과학 지식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주요 저서는
《목민심서》,《경세유표》등이 있다. 2009년 10월 다산유적지에 경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실학박물관이 개관하였습니다.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27-1번지 일원에 3개이 상설전시실과 1개의 기획전시실을 갖추었습니다.
















































 

 


■다산 정약용의 삶이 숨 쉬는 남양주 조안면 다산 유적지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은 조선 후기 최고의 실학자로 평가받는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이 태어나고 오랜 유배생활 끝에 다시 돌아와 학문을 정리하고 생을 마감한 곳이다. 다산 정약용이 어릴 때 안마당처럼 뛰어놀았다는 수종사에서 차로 10여 분 정도 떨어져 있는 다산 문화의 거리는 다산유적지와 실학박물관까지 다산의 출생에서 만년 시절까지 그의 유산을 한 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다산생가 여유당(與猶堂)

 
여유당(與猶堂)은 다산이 고향 집에 건 당호로 “겨울에 시내를 건너는 것처럼 신중하게 하고, 사방에서 나를 엿보는 것을 두려워하듯 경계하다”라는 뜻으로 세상사와 자신에 대한 경계의 뜻이 담겨있다.

 생가 여유당은 다산이 57세 되던 해 유배지에서 풀려 고향으로 돌아와 만년 시절을 보내고 세상을 떠난 곳이다. 유배지에서 쇠약해진 심신을 추스르고 북한강을 유람하며 여유 있는 생활을 보내기도 했고 자신의 학문과 생애를 정리하였다.

그 시절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하는 비운을 벗어나 그리움에 사무쳤던 가족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과 생애를 정리하고 부인과 함께 뒷산에 묻혔다. 그나마 만년 시절에라도 복된 삶이 아니었나 싶다. 학문에 대한 그의 자부심과 업적은 후대로 전하며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다산사당


기념관을 나오면 바로 앞에 다산 동상과 동상 뒤로 사당이 있다. 책을 펼쳐 들고 앉아 있는 선생의 동상은 자신이 꿈꾸었던 세상이 아직도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현실을 안타까움으로 바라보고 있는듯하다.

조금전 다산문화원에서 보았던 글이 떠올랐다. 평생 놓지 못했던 학문성과에 대해 “알아주는 사람이 적고 꾸짖는 사람만 많다면, 천명이 허락해주지 않는 것으로 여겨 한 무더기 불 속에 처넣어 태워버려도 괜찮다.”라고 자부했다. 그의 이러한 자부는 다산 서거 100년이 지나 국권을 상실했던 일제강점기에는 조선학 운동의 중심에 있었다고 한다.

다산이 사유했던 민생과 부국강병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구조적인 변화가 없다면 100년 200년이 흘러도 우리의 삶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문제가 되고 민생의 고달픔은 그때나 지금이나 벗어날 길이 없는 게 아닐까.

 


●다산 선생 묘


다산 동상 옆으로 여유당 생가와 생가 바로 뒷산에 선생의 묘가 있다. 생가와 일직선 상 뒷동산에 있는 선생의 묘에 마음이 가니 발걸음은 생가보다 먼저 묘지를 향해 오르고 있었다. 

부인 풍산 홍 씨와 함께 누워있는 묘는 호석(護石)과 그 뒤로 소나무가 두르고 있고 앞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마지막을 보냈던 여유당 생가와 한강의 흐름을 편안하게 내려다보고 있어 풍수지리에서 보는 ‘임산 배수’형이다.

 

 

●다산 문화의 거리에 있는 실학박물관

 

다산 유적지를 돌아보고 나오면 맞은편에 실학박물관이 있다. 국내 유일의 실학 박물관으로 실학과 관련된 유·무형 자료와 정보를 수집 보존 연구 전시하며 교육과 정보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한 즐거움을 제공하는 다목적 복합문화 공간이다.

다산 유적지는 모두 무료 관람이나 유일하게 이곳 실학박물관은 유료 관람이다. 단,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은 무료로 전시 관람이 가능하다. 여름철이라면 실학박물관 뒤쪽으로 있는 생태공원도 돌아볼 만하다.

 

●다산 기념관

 

다산 문화원에서 다산 사상과 삶의 철학이 잘 드러나는 그래픽 패널 전시와 영상으로 관람하고 나오면 바로 다산 기념관으로 이어지며 유적지 안으로 들어서게 된다. 다산 기념관에는 수원화성 축조 과정에 쓰였던 거중기. 다산 초당 축소모형, 다산 문화원에서 글로 읽으며 상상했던 하피첩 이야기를 디오라마로 전시해 학문과 더불어 인자한 아버지 다산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다산문화원


강진 유배 시절 부인 홍 씨가 살아서 다시 못 볼 것 같은 남편을 그리워하며 시를 짓고 시집올 때 입었던 붉은 치마를 보내왔다. 다산은 부인이 보낸 빛바랜 비단 치마를 여러 폭으로 마름질하여 두 아들에게 경계하는 말을 적어 보내고, 시집가는 딸에게는 매화 가지 위에 두 마리 새가 정겹게 않은 모습을 그리고 시도 지어 주었다는 하피첩 이야기는 오랜 유배생활을 하며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깊었을까를 생각하게 한다.

 

그런 환경에서도 강진 유배 시절 중 다산초당에 머무는 동안 연구와 저서에 몰두해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500여 권의 방대한 책을 저술했다. 백성을 다스리는 목민관들이 지켜야 할 기준을 확립하고 구체적인 시무를 제시하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그의 목민심서에 담긴 개혁 사상은 여전히 이루지 못한 꿈이구나 싶은 생각과 함께 요즘 정치인들에게 의무적으로 읽게 하고 시험이라도 보게 했으면 좋겠더라.

 

 
■다산 정약용의 삶


 
◈다산의 생장 (1762~1782)

 

   1762년(영조38년) 6월16일(음) 정재원의 4남으로 태어남(큰형 약현은 전실 의령 남씨 소생이고, 약전 약종 약용은 해남윤씨 소생,어머니 숙인(淑人) 해남윤씨(海南尹氏)는 고산 윤선도의 후손인 공재 윤두서의 후순), 15세(1776)에 풍산 홍씨 홍화보의 따님과 혼인하여

 

 서울에 살면서 16세(1777)에 이승훈 이가환 등과 만나고, 성호 이익의 유고를 읽고서 실학에 뜻을 두었으며,아버지가 부임한 전라도 화순,경상도 예전 등지에서 과거공부를 계속하였다고 합니다

 


◈다산의 벼슬시절(1783~1800)

 

   22세(1783)에 과거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 23세(1784)에 한강을 따라 서울로 오는 배 안에서 큰형(약현) 처남인 이벽으로부터 천주교에 관한 말을 듣고  큰 감동을 받아,28세(1789)에 문과에 학격하여 벼슬을 시작하고


   규장각 초계문신으로 뽑혔으며, 31세에 수원화성을 설계하고, 거승기 녹로 등을 고안하여 축성 경비 4만냥을 절약하고 공사기간을 7년이나 단축시키고,33세에 경기도 암행어사로 나아가 백성들의 고통을 목격하고 비정을 고발하고, 36세에  승정원 동부승지에 제수되었으나 사직상소 (병방사동부승지소)를 올려 천주교와는 거리를 두었고,

 

황해도 곡산부사로 제수되어  목민관으로서의 능력을 보이고,38세에 3농정책을밝힌,응지론농정소'을 올리고,39세인 1800년(기묘년) 봄 고향으로 돌아와 당호(堂號)를  여유(與猶)라 하고 운둔하고,그해 여름 정조가 승하 하였답니다

 


◈다산의 유배시절 (1801~1818)

 

     40년 1801년(신유년)  2월, 책롱사건으로 다산의 3형제가 체포되어 의금부에 투옥, 셋째형 약종은 사형 당하고,  11월에 약전은 흑산도로 다산은 강진으로 유배, 거처를 ;사의재라 이름하고,뒤에 보은 산방과 이청의 집에서 지내다,


     47세 되던해(1808)봄,  처사 윤단의 산정(다산초당)으로 옮겨, 이곳에서 10년을 보내며 다산학을 이룩, 55세(1816) 때 나주 율정에서 생이별한 둘째형 약전의 유배지 흑산도에서 죽음, 몇 차례 해배 움직임이 있었으나 반대파에 의해 저지되다 마침내 57세(1818) 되던  8월에 이태순의 상소로 18년 만에 유배에서 풀려나 9월 초에 강진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와, 해배를
     전후하여 〈경세유포〉 〈목민심서〉〈흠흠신서〉를 완성하였다 합니다

 

 

◈다산의 만년 (1819~1836)
    
   58세 가을에 용문산을,59세에 춘천 청평산을 유람,61세 회갑을 맞아'자찬묘지명'을 지음,
  봄에 대산 김매순과 경의에 관해,여름에 석천 신작과 주례에 관해 토론,
  75세인 1836년 2월22일 고향(마재) 집에서 세상을 떠 , 4월1일, 고향집 뒷동산에 안장되고,1
  910년(순종4) 7월18일 정이품 정헌대부 규장각 제학으로 추증되고 시호를 문도(文度)라 합니다

 

 


< 참고>

 


◎남양주 다산정약용 홈페이지

http://www.nyj.go.kr/dasan/index.jsp

 

◎다산유적지

http://www.doopedia.co.kr/mo/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2&MAS_IDX=101013000886025


◎정약용-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https://ko.wikipedia.org/wiki/%EC%A0%95%EC%95%BD%EC%9A%A9


◎정약용 - 나무위키


https://namu.wiki/w/%EC%A0%95%EC%95%BD%EC%9A%A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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