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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희(徽國公 朱熹)를 배향한 군포시 삼성사(三星祠) 2018년추향제 에서-(1/2)
글쓴이 손상태
날짜 2018-10-28 [22:42] count : 204

 









주희(徽國公 朱熹)를 배향한 군포시 삼성사(三星祠) 2018년추향제 에서-(1/2)

(2018/10/23 현재)


2018년10월23일(화) 오전 11시 군포시 삼성로 69번길 16 삼성사(三星祠) 사당에서
거행된 휘국공 주희(徽國公 朱熹)를 배향한 군포시 삼성사(三星祠) 추향제(秋享祭) 전경 입니다.











삼성사(三星祠) 본당 입니다























헌관과 집사원의 입장 입니다



















집례 대축 찬인의 경배 입니다








집례의 휘국공 주희(徽國公 朱熹)에 대한 추향제(秋享祭) 의식 진행 안내 입니다.









봉향,봉로,봉작,전작등 집사자의 경배와 관세수 입니다













초헌관의 제수진설 확인과 전폐례 입니다







 

■삼성사(三星祠)

 

 -주소 : 경기도 군포시 삼성로 69번길 16

 

사우(祠宇)는 예(禮)를 통해 세상을 이끌고자 하는 성리학적 이념을 바탕으로 설립된 조선시대 향촌의 대표적인 봉사(奉祀) 기관으로, 선비를 기르고 성리학에 크게 기여한 학자를 배향하는 ‘존현(尊賢)·양사(養士)’의 정신을 목적으로 서원에 부속되어 세워졌다.


삼성사는 서원철폐령(1868-1871)이 시행된 이후인 1882년 4월 삼성마을에 살던 주정홍이 기호학맥의 중요인물인 임헌회가 갖고 있던 주자의 영정을 전달받으면서 문중과 사림의 협력을 얻어 창건하였다. 다음해인 1883년 주정홍이 사망하자 이후 1912년까지 30년간 향사가 중단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후 일제강점 초기인 1912년에 중수되어 일제의 학정 속에서도 면면히 그 맥을 이어왔다. 한국전쟁의 여파로 1951년에는 사우 일부가 붕괴되고 주자의 영정도 불에 타는 변을 당하였다. 그러다가 1952년 전쟁의 와중에서 문중과 유림이 힘을 합쳐 사우를 복원하였다.


1973년에는 중건위원회, 1975년에는 삼성사봉찬회가 발족하여 근10년의 노력끝에 사우와 모현재 개축을 1984년에 마무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매년 향사는 봄,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열린다. 봄의 향사인 춘향(春享)은 주자의 사망일인 음력 3월 9일이며 가을의 향사인 추향(秋享)은 음력 9월 15일 주자의 탄신일이다. 시간은 춘추향사 모두 11시이다. 향사를 위해서는 헌관과 집사를 선정해야 한다. 향사에서 술을 올리는 헌관은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3명이다. 헌관에는 유림과 사회의 명망인사가 선정된다. 향사를 주관하는 집사에는 초헌때 축문을 읽을 대축(축관)을 비롯해 집례, 봉향, 봉로, 봉작, 전작, 진설, 사준, 알자 등이 있다.
향사의 절차는 크게 입재, 행재, 파재로 나뉜다. 입재는 재계(근신, 정성들이기) - 분정(집사의 선정) - 성생(희생 살펴보기) - 진설(제물의 봉인과 제상차리기) - 사축(축문쓰기)순으로 진행된다. 행재는 전폐(초헌관의 폐백드리기) - 초헌(독축) - 아헌 - 종헌 - 음복(초헌관) - 망예(초헌관의 축문, 폐백불사르기)순으로 진행된다. 절차의 마지막 과정인 파재는 음복개좌 - 출문당회(망기작성)순이다.

 

 

●삼성마을 유래(1)

 

삼성마을에는 유적지가 될 만한 것들이 많다. 칠팔백년 된 은행나무를 비롯해 주자를 모시고 유학자들이 모여서 제향을 드리는 삼성사와 역사가 백년이 넘은 삼성리 교회 그리고 삼성교회 옆 서당이 있다.  이 서당의 한학 선생님들은 해방 후까지도 계셨으며, 이곳에서 공부한 곽씨들은 벼슬길에 많이 올랐다. 이밖에 선교사들이 들어오면서 삼성교회 안에 ‘삼성학원’을 세웠는데 4년제 초등학교인 이 학원은 다른 지역보다 일찍 개화교육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 지역의 유지들은 모두 그곳에서 공부를 한 사람들이다. 이처럼 유적지가 많고 유래가 있으며 인재가 많이 나는 마을이기에 별성(星)자를 써 ‘삼성(三星)’이라고 붙여졌다고 하는데, ‘삼성’이라는 발음이 어렵기 때문에 민간에서는 이를 ‘삼세이’라고 불렀다 한다.

 

●삼성마을 유래(2)

 

이 마을의 호칭을 삼성(三姓, 三聖, 三星)이라고 하는 데는 다음의 세가지 설이 있다. 첫째로 신안 주씨(新安朱氏), 인동 장씨(仁同張氏), 현풍 곽씨(玄風郭氏)의 세 성씨가 처음에 세거하여 살고 있어 마을 호칭을 삼성(三姓)이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둘째로 주자(朱子)를 모신 영당이 있어 이를 모현재라고 하였고, 또한 옛날 이곳에 사찰이 있었는데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수도에 정진하였으며, 다른 지역보다 먼저 이곳에 서당이 설립되어 많은 사람들이 옛 성인들의 성리학을 수학하여 삼성(三聖)이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 셋째는 별이 빛난다는 뜻인데, 이곳은 다른 지역에 비하여 산자수려하고 서당이 있어 많은 인재가 배출되어 타지역 주민들이 부러워하는 마을로서 빛나고 있다고 하여 삼성(三星)이라 하였다는 설이 전한다.

 

●감투봉 아가씨 전설

 

군포2동(부곡동) 삼성마을에는 ‘감투봉 아가씨’ 전설이 전하고 있다. 이 마을은 옛날부터 과거공부하는 소년들이 각처에서 많이 모여들어 공부하며 등과를 위해 정성을 올리는 마을로 유명했다. 위치상 한양이 가깝고 삶의 이치를깨우쳐주는 신령스러운 기가 있다는 수리산(修理山)을 뒤로 하고 있으며, 남북으로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가르는 삼파산(감투봉)의 높은 봉우리와 삼태기 같이 포근하면서 종모양을 하고 마을 가운데 복스럽게 살짝 뻗쳐 나온 언덕그리고 양 골짜기 사이 바위에서 솟아나는 두 샘물이 있어 명당 터로 소문이 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유로 이 마을은 예로부터 과거시험에 합격하는 인재가 많았고 과거를 준비하는 사람과 그 가족들이 온갖 정성을 올리는 곳이 되어 그에 얽힌 애절한 이야기 또한 전해지고 있다. 천년 가까운 은행나무가 우뚝 서 있는 삼성마을 샘물 우물가에는 빨래하는 아낙네들이 항상 모여들었다. 그 아래로는 주야로 소년들의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서당이 있었고, 멀지 않은 곳 남쪽 언덕에는 유교 성리학을 창건한 주자(朱子) 곧 주희를 모시는 사당인 모현재(慕賢齋)-삼성사가 있었다.

 

과거공부를 하러 온 청년들 중에 우물가와 모현재 사이를 자주 오가며 글을 읽고 달님에게 정성 드리기 좋아하는 총각이 있었는데 우물가에서 동네 아가씨들에게 물을 가끔 얻어마시곤 하다가 한 예쁜 아가씨에게 마음을빼앗겨 남모르게 사랑하게 되었다. 결국은 밤이면 남몰래 우물가에서 혹은 은행나무 밑에서 혹은 과거시험 합격을 비는 산줄기 서낭당에서 만나게 되었으며 달이 떠오르면 달님에게 꼭 과거에 등과하게 해달라고 함께 정성을 다해 빌었다. 때가 다가와서 과거시험 방이 나붙고, 청년은 아가씨에게 꼭 합격하여 돌아올 것을 굳게 약속하고는 한양으로떠났다.

 

 아가씨는 홀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샘물을 떠놓고 뒤뜰에서 빌고, 우물가 옆 은행나무에 절하며 삼성사와 서낭당에 가서 빌고 또 빌었다. 그것도 모자랄 것 같으면 뒷산의 높은 산본(山本)마을로 향한 중턱에서 물이 철철 흐르기로 유명한 ‘원수(元水)’물을 떠가지고 감투봉으로 올라 달님에게 빌며 소년이자 장차 낭군이 될 청년이 꼭 장원급제 하기를 매일 기원하였다. 그런 정성이 통하였는지 청년은 드디어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노란 옷에 화관을 쓰고 삼일유가를 다니며 장원급제 행차를 하고 삼성마을로 돌아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런데 아가씨에게 그만 이변이 생기고 말았다. 아가씨는 청년의 장원급제 소식에 너무 기뻐 이는 하늘의 달님이 도우신 덕이라 생각하고 감사의 기도와 앞으로 행복하게 살게 해달라고 빌기 위해 감투봉에 올랐다. 그때 산기슭 용호리 마을에서 힘겨루기를 하느라 잘 다투던 호랑이와 용이 마침 샘물가에서 아가씨를 보고 그 마음씨와 외모를 탐내어 사람으로 변해 서로 차지하겠다고 감투봉 아래까지 따라 올라가 그 편편한 봉우리에서 무섭게 싸우기 시작하였다.

 

 그것도 모르고 아가씨는 마냥 달님에게 빌고 있었고, 한편 과거에 합격하여 돌아온 청년은 아가씨를 백방으로찾았으나 보이지 않자 예전에 같이 달님에게 소원을 빌던 감투봉으로 항햐게 되었다. 멀리서 보니 역시 아가씨는 감투봉에서 물을 떠놓고 빌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앞에 사람처럼 보였던 사내 둘이 싸우고 있다가 갑자기용과 호랑이로 변하여 무섭게 싸우는 것이 아닌가. 청년은 소리쳐 아가씨를 불렀고, 아가씨는 사랑하는 낭군의 외쳐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청년은 보이지 않고 웬 무시무시한 호랑이와 용이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는 모습만이 앞을 막았다.

 

그 모습에 아가씨는 그만 까무라쳤고 청년은 나뭇가지와 돌로 호랑이와 용을 처치하고는 지친몸으로 아가씨 앞으로 다가갔으나 아가씨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그동안 지나치게 정성을 다하느라 몸이 쇠약해진데다 흉악한 짐승들이 싸우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아 계속 깨어나지 못하였고 청년은 아가씨를 밤새도록 껴안고 흔들며 울었다.다음날 마을사람들은 장원급제 축하잔치를 준비하고 청년을 찾았으나 도대체 찾을 수가 없어서 나중에는 감투봉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난밤 추운 날씨에 두 남녀가 꼭 부둥켜안고 얼어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후 이 마을은 이 봉우리를 마치 장원 급제한 벼슬아치의 관모와 같이 생겼다 하여 관모봉이라 이름붙이고, 애절한두 남녀의 못다한 사랑의 사연을 생각하여 감투봉 아가씨 전설을 후세에 전해오고 있다. 이후 정월 보름이 되면 젊은이들은 쇠가죽 큰북을 밤낮으로 치며 악귀와 도둑을 내몰기 위해 마을 안을 돌아다녔으며 저녁이 되면 감투봉에 올라 옛 전설을 생각하고 둥근 보름달이 뜨는 것을 제일 먼저 보는 사람이 그해 장가를 갈 수 있다고 하며 풍성하고 떠들썩한 보름행사를 즐겼다.

 

 

■휘국공 주희(徽國公 朱熹, 1130 - 1200)


남송의 유학자로 복건성의 우계(尤溪) 출생이다. 자는 원회(元晦), 중회(仲晦)이고 호는 회암(晦庵), 회옹(晦翁), 운곡산인(雲谷山人) 창주병수(滄洲病瘦), 둔옹(遯翁) 등이며, 이름은 희(熹)다.

 

선조는 대대로 휘주무원(徽州?原: 안휘성)의 호족으로 아버지 위재(韋齋)는 관직에 있다가 당시의 재상 진회(秦檜)와의 의견 충돌로 사직하고 우계에 우거하였다. 주자는 이곳에서 14세때 아버지가 죽자 그 유명에 따라 호적계, 유백수, 유병산 에게 사사하면서 불교와 노자의 학문에도 흥미를 가졌으나, 24세 때 이연평(李延平)을 만나 공부하면서 유학에 복귀하여 그의 정통성을 계승하게 되었다.


그의 강우(講友)로는 장남헌(張南軒), 여동래(呂東萊)가 있으며, 또 논적(論敵)으로는 육상산(陸象山)이 있어 이들과 상호 절차탁마하면서 주자의 학문은 비약적으로 발전 심화하여 중국 사상사에 사변철학과 실천 윤리의 체계를 확립하기에 이르렀다. 주희의 철학은 이기철학(理氣哲學)이라 하는데 형이하학적인 기에 대해서 형이상학적인 이(理)를 세워 이와 기의 관계를 명확하게 하고, 생성론(生成論), 존재론(存在論)에서 심성론(心性論), 수양론(修養論)에 걸쳐 이기에 의하여 일관된 이론 체계를 완성시켰다.

그의 학문을 저서를 통해서 관찰해보면 46세까지를 전기, 이후 60세까지를 중기, 61세 이후를 후기로 하는 3기로 대별할 수 있다.

 

 전기의 저서로는 『논어요의(論語要義)』 『정씨유서(程氏遺書)』, 『논맹정의(論孟精義)』,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태극도설해(太極圖說解)』, 『통서해(通書解)』, 『정씨외서(程氏外書)』, 『근사록(近思錄)』 등이 있다. 중기에는 『논맹집주혹문(論孟集註或問)』, 『시집전(詩集傳)』, 『주역본의(周易本義)』, 『소학서(小學書)』, 『대학장구(大學章句)』, 『중용장구(中庸章句)』 등이 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사서(四書)의 신주(新註)'를 완성한 것이다.

 

60세 때는 『중용장구』에 서문을 붙여 상고에서 후대까지 도학을 전한 성현의 계통을 밝혀 도학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후기에는 오경(五經)에 손을 대어 『석전례의(釋奠禮儀)』, 『맹자요로(孟子要路)』, 『예서(禮書)』, 『한문고이(韓文考異)』 『서전(書傳)』 등을 저술하였다. 주자의 정치에 대한 의견은 『임오응소봉서(壬午應詔封事)』나 [무신봉사(戊申封事]에 나타나 있으며, 또 절동(浙東)의 지방관으로 있을 때 기근을 구제하였다는 실적도 있으나 만년에는 권신의 미움을 사 그의 학문이 위학(僞學)이라 하여 많은 박해를 받았으며 해금(解禁)이 있기 전에 죽었다.

 

그 후 그의 학문이 인정되어 시호가 내려지고 다시 태사(太師), 휘국공(徽國公)으로 추증되었다. 사후에 『주문공문집(朱文公文集)』, 『주자어류(朱子語類)』가 편찬되었다.

 

송나라 영종 가정 원년(1208)에 문공(文公)이라 시호하였다. 이종 보경(寶慶) 2년(1226)에 태사를 추증하였고 신국공(信國公)으로 봉해졌다가 다시 소정(紹定) 3년(1230)에 휘국공으로 봉해졌다. 순우 원년(1241)에 문묘에 종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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