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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경주답사]경주 토함산 불국사 탐방-(2/2)
글쓴이 손상태
날짜 2017-11-11 [20:20] count : 285

 









[경주답사]경주 토함산 불국사 탐방-(2/2)

(2017/11/08 현재)


2017년도 과천향교의 임원연수의 일환으로 11/7(화)~8(수)(1박2일) 실시한
경주지역 문화 답사지중 석굴암 다음으로 들린 경주 토함산 불국사 탐방 전경 입니다


 

 

 

 

 

 

 

 

 

 

 

 

 

 

 

 

 

 

 

 

 

 

 

 

 

 

 

 

 

 

 

 

 

 

 

 

 

 

 

 

 

 

 

 

 

 

 

 

 

 

 

 

 

 

 

 

 

 

 

■불국사 [佛國寺]-브리태니커 백과사전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751년(경덕왕 10) 김대성(金大城)이 현세의 부모를 위해 이 절을 창건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죽은 후 국가에 의해 완성되었기 때문에 개인의 원찰(願刹)이라기보다는 국가의 원찰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한편 〈불국사고금창기 佛國寺古今創記〉에는 528년(법흥왕 15)에 법흥왕의 어머니인 영제부인(迎帝夫人)이 화엄불국사(華嚴佛國寺)를 창건하고 574년(진흥왕 35)에 중창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신라 역사와 모순된 것이며 〈삼국유사〉의 내용을 그대로 베낀 듯한 대목도 있어서 사료로서의 신빙성이 적다. 그러나 창건 당시의 주요건물에 대해 자세히 기술해놓아 불국사의 원형복원에 좋은 자료가 된다. 창건 이후 여러 차례의 중창과 중수를 거쳤으며 현존하는 주요건물들은 대체로 임진왜란 이후에 복구된 것이다. 석탑을 포함한 석조물은 병화를 입지 않아 신라시대의 원형을 유지한 것들이 꽤 남아 있다. 현재의 모습은 1970년의 대대적인 복원공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불국사는 신라인이 염원한 이상의 불국토(佛國土)를 3갈래로 구현한 것으로 〈법화경 法華經〉에 근거한 석가의 사바세계는 대웅전으로, 〈무량수경 無量壽經〉에 근거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는 극락전으로, 〈법화경〉에 근거한 비로자나불의 연화장 세계는 비로전으로 대표된다. 즉 불국사의 경내는 석단(石壇)에 의하여 단상(壇上)의 불국토와 단하(壇下)의 속계(俗界)로 양분된다. 크고 작은 돌을 빈틈없이 쌓아올려 만든 석단 위에 청운교(靑雲橋)·백운교(白雲橋), 칠보교(七寶橋)·연화교(蓮花橋)라는 2쌍의 다리를 놓았다. 청운교·백운교는 자하문(紫霞門)을 거쳐 석가모니의 사바 세계인 대웅전으로 오르게 되어 있다. 대웅전 앞에 있는 3층석탑과 다보탑(多寶塔)은 서로 마주 서 있는 쌍탑구조이며, 뒤편으로는 경론(經論)을 강술하는 무설전(無說殿)을 두고 대웅전 일곽을 동·서 행랑으로 에워싸고 있다. 연화교와 칠보교를 올라 안양문(安養門)을 지나면 극락전에 이르게 되며 그 안에 금동아미타불좌상을 안치했다. 무설전 뒤에는 관음전이 있고, 그 서편에는 금동비로자나불좌상을 봉안한 비로전이 있다. 이외에도 토함산 일대에는 몽성암(夢成庵)과 보덕굴(普德窟)을 비롯하여 불국사 부속암자들이 다수 있다. 칠보교 아래에는 2쌍의 당간지주와 석조(石槽)가 있고, 5기의 부도가 남아 있다

 


■경주 불국사(慶州 佛國寺) - 문화재청 자료

 

-종 목  사적  제502호 
-지정(등록)일 2009.12.21
-소 재 지 경북 경주시  진현동 15-1번지 등 

 

경주 토함산에 자리잡은 불국사는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짓기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에 완성하였다. 이후 조선 선조 26년(1593)에 왜의 침입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버렸다. 이후 극락전, 자하문, 범영루 등의 일부 건물만이 그 명맥을 이어오다가 1969년에서 1973년에 걸친 발굴조사 뒤 복원을 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경내에는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다보탑과, 석가탑으로 불리는 3층 석탑, 자하문으로 오르는 청운·백운교, 극락전으로 오르는 연화·칠보교가 국보로 지정, 보존되어 있다. 이러한 문화재는 당시 신라 사람들의 돌을 다루는 훌륭한 솜씨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아울러 비로전에 모신 금동비로자나불좌상과 극락전에 모신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을 비롯한 다수의 문화유산도 당시의 찬란했던 불교문화를 되새기게 한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1995년 12월에 석굴암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경주 불국사 다보탑(慶州 佛國寺 多寶塔) - 국보  제20호 


불국사는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 김대성의 발원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과거·현재·미래의 부처가 사는 정토(淨土), 즉 이상향을 구현하고자 했던 신라인들의 정신세계가 잘 드러나 있는 곳이다.『삼국유사』에는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 석굴암을, 현생의 부모를 위해서 불국사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가 목숨을 다할 때까지 짓지 못하여 그 후 나라에서 완성하여 나라의 복을 비는 절로 삼게 되었다. 다보탑과 석가탑(불국사삼층석탑,국보 제21호)은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석탑으로, 높이도 10.4m로 같다. 절내의 대웅전과 자하문 사이의 뜰 동서쪽에 마주 보고 서 있는데, 동쪽탑이 다보탑이다. 다보탑은 특수형 탑을, 석가탑은 우리나라 일반형 석탑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두 탑을 같은 위치에 세운 이유는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多寶佛)이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할 때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법화경』의 내용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탑으로 구현하고자 하기 위함이다.

 

석가탑을 보면 2단의 기단(基壇)위에 세운 3층탑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지만, 다보탑은 그 층수를 헤아리기가 어렵다. 십(十)자 모양 평면의 기단에는 사방에 돌계단을 마련하고, 8각형의 탑신과 그 주위로는 네모난 난간을 돌렸다. 탑이 건립된 시기는 불국사가 창건된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으로 추측된다. 목조건축의 복잡한 구조를 참신한 발상을 통해 산만하지 않게 표현한 뛰어난 작품으로, 4각, 8각, 원을 한 탑에서 짜임새있게 구성한 점, 각 부분의 길이·너비·두께를 일정하게 통일시킨 점 등은 8세기 통일신라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안타깝게도 다보탑에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설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1925년경에 일본인들이 탑을 완전히 해체, 보수하였는데, 이에 관한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또한 탑 속에 두었을 사리와 사리장치, 그 밖의 유물들이 이 과정에서 모두 사라져버려 그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기단의 돌계단 위에 놓여있던 네 마리의 돌사자 가운데 보존상태가 가장 좋았을 듯한 3마리가 일제에 의해 약탈되어, 이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 오래전부터 있었으나 아직까지 그 행방을 알 수가 없다.


한국(韓國)의 석탑 중에는 일반형을 따르지 않고 특이한 모양을 지닌 것이 몇 기(基) 있는데, 이 탑도 그 중의 하나이지만, 이만큼 기발한 의장(意匠)으로 이루어진 탑은 없다. 불국사(佛國寺) 대웅전(大雄殿) 앞에 서쪽 석가탑(釋迦塔)과 대조를 이루어 동쪽에 자리한 탑으로, 감은사(感恩寺) 다음가는 전형적인 쌍탑가람(雙塔伽藍)의 배치를 보여준다.

 

기단부는 4방에 보계(寶階)를 마련하였는데, 보계에는 난간을 설치했던 돌기둥이 남아 있다. 그 위는 네 모서리와 중앙에 4각형 돌기둥을 세우고 교차되는 받침을 얹어 갑석(甲石)을 받치고 있다. 이 기단에는 원래 네 모서리에 석사자(石獅子)를 배치하였으나 지금은 1구(軀)만 남아 있다. 갑석 위에는 4각형 난간 속에 8각 신부(身部)를 두었으며, 다시 8각 갑석을 덮고 8각 난간을 돌린 다음, 그 안에 8개의 죽절형(竹節形) 돌기둥을 돌려 팔각연화석(八角蓮華石)을 받치고 있다. 연화석(蓮華石) 위에는 8개의 기둥머리 모양의 받침이 있어 8각 옥개석(屋蓋石)을 받치고 있다.

 

상륜부(相輪部)는 8각의 노반(路盤)·복발(覆鉢)·앙화(仰花)·보륜(寶輪)·보개(寶蓋)가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다. 이 탑의 구조는 완전히 의표(意表)에서 벗어난 참신한 착상으로 이루어져서 전무후무한 걸작을 남겼고, 조법(彫法)에 있어서도 마치 목조건축을 보는 듯 우려하며, 복잡한 아래위의 가교(架橋)가 중심에 통일되어 한 점의 문란함도 없다. 이 탑을 다보탑(多寶塔)이라고 하는 것은, 다보여래(多寶如來)가 석가여래(釋迦如來)와 나란히 앉아 석가의 설법을 증명하는 상으로 해석되는데, 동양의 불교국가에서 석조(石造)로서는 가장 뛰어나고 오랜 작품이다. 이 탑은 서쪽의 삼층석탑(三層石塔)과 함께 불국사가 창건된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1925년에 수리를 한 바 있다.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慶州 佛國寺 三層石塔) - 국보  제21호


불국사는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 김대성의 발원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과거·현재·미래의 부처가 사는 정토(淨土), 즉 이상향을 구현하고자 했던 신라인들의 정신세계가 잘 드러나 있는 곳이다. 『삼국유사』에는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 석굴암을, 현생의 부모를 위해서 불국사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혜공왕 10년(774) 12월 그가 목숨을 다할 때까지 짓지 못하여, 그 후 나라에서 완성한 후 나라의 복을 비는 절로 삼게 되었다.

 

불국사삼층석탑과 불국사다보탑(국보 제20호)은 절의 대웅전 앞 뜰 동서쪽에 각각 세워져 있는데, 서쪽탑이 삼층석탑이다. 탑의 원래 이름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釋迦如來常住設法塔)’으로, ‘석가탑’이라고 줄여서 부른다. 두 탑을 같은 위치에 세운 이유는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하는 것을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多寶佛)이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법화경』의 내용에 따른 것이다.

탑은 불국사가 창건된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때 조성된 것으로 추측되며,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석탑으로, 감은사지삼층석탑(국보 제112호)과 고선사지삼층석탑(국보 제38호)의 양식을 이어받은 8세기 통일신라시대의 훌륭한 작품이다. 탑 전체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도록 2층의 기단이 튼실하게 짜여 있으며, 목조건축을 본따서 위·아래층 기단의 모서리마다 돌을 깎아 기둥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탑신에도 그러한 기둥을 새겼으며, 지붕돌의 모서리들은 모두 치켜올려져 있어서 탑 전체에 경쾌하게 날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더한다.

 

1966년 9월에는 안타깝게도 도굴꾼들에 의해 탑이 손상되는 일이 있었으며, 그해 12월 탑을 수리하면서 2층 탑신의 몸돌 앞면에서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던 사각형의 공간을 발견하게 되었다. 여기서 여러가지 사리용기들과 유물을 찾아냈는데, 그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국보 제126호)이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로 닥나무 종이로 만들어졌다. 탑의 머리장식(상륜부)은 16세기 이전에 유실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1973년 남원 실상사삼층석탑(보물 제37호)의 머리장식을 본따서 복원하였다. 탑 주위로 둘러놓은 주춧돌 모양의 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는데, 이를 부처님의 사리를 두는 깨끗한 곳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 탑은 ‘무영탑(無影塔: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탑)’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여기에는 석가탑을 지은 백제의 석공(石工) 아사달을 찾아 신라의 서울 서라벌에 온 아사녀가 남편을 만나보지도 못한 채 연못에 몸을 던져야 했던 슬픈 전설이 서려 있다.

 

불국사(佛國寺) 대웅전(大雄殿) 앞뜰에 동서로 세워진 두 탑 중 서쪽에 있는 탑이다. 2층 기단 위에 세워진 일반형 석탑으로, 각부의 비례가 아름다운 우수작의 하나이다. 기단부는 몇 장의 돌로 결구(結構)되었고, 아래위 면석(面石)은 탱주(탱柱) 둘을 세워 3구(區)로 구분하였다. 탑신부는 탑신과 옥개석(屋蓋石)이 각각 한 돌로 되어 있고, 옥신(屋身)에는 우주(隅柱)가 표현되어 있으며, 옥개받침은 층마다 5단이다. 상륜부(相輪部)는 노반(路盤)·복발(覆鉢)·앙화(仰花)까지만 남고 나머지는 없어졌다.

 

특히 탑 주위에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연화(蓮華)가 조각된 8개의 둥근 돌을 돌리고, 이들 연화석(蓮華石) 사이에 긴 돌을 끼워 경계를 삼았는데, 이것이 이른바 ‘팔방금강좌(八方金剛座)’이다. 정역(淨域)을 나타내기 위한 시설이라고도 해석되며, 한편으로 연화대(蓮華臺) 위에 8보살(菩薩)을 안치하여 공양하는 의태(意態)를 나타내려 한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이 탑은 일명 석가탑(釋迦塔)이라고 하는데, 동쪽의 다보탑(多寶塔)에 대한 호칭으로, ‘법화경(法華經)’에 보이는 석가여래(釋迦如來) 상주설법(常住說法)의 상(相) 곧 다보여래(多寶如來)와 나란히 앉기 이전의 상(相)으로 해석된다. 동서 두 탑의 대조가 묘할 뿐 아니라 조형(造形)이 소박 장중하여, 신라(新羅) 석탑 중에서 하나의 전형이라고 할 만하며, 이 탑의 건립연대는 불국사가 창건된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으로 추정된다.

 

▶경주 불국사 연화교 및 칠보교(慶州 佛國寺 蓮華橋 및 七寶橋) - 국보  제22호

 

불국사의 예배공간인 대웅전과 극락전에 오르는 길은 동쪽의 청운교와 백운교, 서쪽의 연화교와 칠보교가 있다. 연화교와 칠보교는 극락전으로 향하는 안양문과 연결된 다리로, 세속 사람들이 밟는 다리가 아니라, 서방 극락세계의 깨달은 사람만이 오르내리던 다리라고 전해지고 있다. 전체 18계단으로, 밑에는 10단의 연화교가 있고 위에는 8단의 칠보교가 놓여있다. 청운교 ·백운교보다 규모가 작을 뿐 구조나 구성형식 등이 매우 비슷한데, 계단을 다리형식으로 만든 특이한 구성이나 경사면을 45°각도로 구성한 점, 다리 아래가 무지개 모양을 그리고 있는 것이 그 예이다. 비슷한 구성 속에도 이 다리만의 독특한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연화교의 층계마다 연꽃잎을 도드라지게 새겨놓았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오랜 세월동안 스쳐간 사람들의 발자국 탓에 많이 닳아서인지 조각이 희미해져 있어, 지금은 통행을 금지하고 있다.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창건 당시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 다리를 오르내리며 극락왕생을 기원하였고, 비구니가 된 신라 헌강왕비도 이곳을 오가며 왕의 극락왕생을 빌었다고 전해진다. 동쪽의 청운교와 백운교가 웅장한 멋을 보여주는데 비해, 섬세한 아름다움을 내보이고 있어, 불국사의 조형에 조화와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불국사(佛國寺) 앞면 대석단(大石壇) 동쪽의 청운교(靑雲橋)·백운교(白雲橋)에 대하여 서쪽에 연화교(蓮華橋)·칠보교(七寶橋)가 있다. 가구수법(架構手法)은 동쪽의 청운교·백운교와 대동소이하며, 전체의 높이가 청운교의 높이와 같은 소규모의 것이다. 밑의 연화교는 10단의 층계를 만들었는데, 계단식 등항(登桁)에 만들어 둘로 나누었고, 양쪽 끝의 등항(登桁)에는 난간을 설치하였던 흔적이 있으나 지금은 아래위에 돌기둥만 서 있다. 다리밑은 호형(弧形)으로 가공한 돌로 궁륭형(穹융形) 통로를 만들어 놓은 점이 동쪽의 백운교와 같으나, 이 석제(石梯)에서 특이한 것은 층계마다 아름다운 연판(蓮瓣)이 양각되어 있는 점이다.

 

칠보교는 8단의 보계(寶階)로 되어 있는데, 한 장의 긴 돌로 된 등항(登桁)으로 양분된 점이 연화교와 다르다. 돌기둥이 아래위에 남아 있어 석란(石欄) 설치의 흔적을 남겨 놓은 점은 같은 형식이다. 다만 규모가 작아졌기 때문에 다리밑에 통로를 만들지 않았으며, 보계(寶階)에 특별한 조각장식은 없다. 칠보교를 올라서면 안양문(安養門)을 지나 극락전(極樂殿)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 석제(石梯) 또한 약 45도의 안정된 경사를 보이며, 동쪽 석제(石梯)의 웅장함에 비하여 아름답고 섬세한 맛이 있어 조화와 변화를 주고 있다. 이 석제(石梯)도 동쪽 석제(石梯)와 마찬가지로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74년 중수할 때에 돌간대를 다시 끼워 옛모습을 재현시켰다.

 

▶경주 불국사 청운교 및 백운교(慶州 佛國寺 靑雲橋 및 白雲橋) - 국보  제23호


불국사의 예배공간인 대웅전과 극락전에 오르는 길은 동쪽의 청운교와 백운교, 서쪽의 연화교와 칠보교가 있다. 청운교와 백운교는 대웅전을 향하는 자하문과 연결된 다리를 말하는데, 다리 아래의 일반인의 세계와 다리 위로의 부처의 세계를 이어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전체 33계단으로 되어 있는데, 33이라는 숫자는 불교에서 아직 부처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33가지의 단계를 의미한다. 즉, 다리를 통해 깨달음에 다다르고자 하는 ‘희망의 다리’, ‘기쁨과 축복의 다리’로의 표현의지인 것이다. 아래로는 18단의 청운교가 있고 위로는 16단의 백운교가 있는데, 청운교(靑雲橋)를 푸른 청년의 모습으로, 백운교(白雲橋)를 흰머리 노인의 모습으로 빗대어 놓아 인생을 상징하기도 한다.

 

계단을 다리형식으로 만든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으며, 오르는 경사면을 45°각도로 구성하여 정교하게 다듬었다. 다리 아래는 무지개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직선으로 딱딱해졌던 시선을 부드럽고 생동감있게 풀어주고 있다. 다리가 있는 석축 아래쪽으로 연못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지금도 계단 왼쪽에 물이 떨어지도록 만들어 놓은 장치가 남아 있다. 이곳에서 물이 떨어지면 폭포처럼 부서지는 물보라에 의해 무지개가 떴다고 전하고 있어, 무척이나 아름다웠을 옛 불국사를 그려보게 된다.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신라시대의 다리로는 유일하게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매우 귀중한 유물이다. 또한, 무지개모양으로 이루어진 다리 아래부분은 우리나라 석교나 성문에서 보여지는 반원아치모양의 홍예교의 시작점을 보여주고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토함산(吐含山)에서 뻗어 내려오는 한 줄기를 잘라 남향으로 석단(石壇)을 만들어 고대(高臺)를 이루고 불국사를 세웠는데, 이 석단 앞면 두 곳에 석제(石梯)를 가설하여 당탑(堂塔)에 오르도록 되어 있다. 곧, 동쪽에 있는 2단의 석제(石梯)가 이것인데, 밑의 것을 청운교(靑雲橋), 위의 것을 백운교(白雲橋)라 한다. 18단의 청운교는 등항(登桁)에 의하여 좌우로 구분되었는데, 등항(登桁)에는 중앙에 능선을 두었고, 좌우쪽 끝의 등항(登桁)에는 원래 난간이 가설되어 있었던 모양이나 지금은 아래위에 돌기둥만 남아 있다. 다리밑은 작은 돌을 가구(架構)하여 궁륭형(穹륭形)을 만들어 사람이 다닐 수 있게 되어 있다. 그 위쪽 양단(兩端)에는 등항(登桁)까지 내밀린 갑석(甲石)이 있는데, 우각(隅角)의 반전수법(反轉手法)은 다보탑(多寶塔)이나 석가탑(釋迦塔)의 반전수법과 일치한다. 청운교를 올라서면 보도(步道)가 마련되어, 서쪽의 환상적인 범영루(泛影樓) 돌기둥을 지나 극락전(極樂殿) 앞에 이르게 된다.

 

청운교 위의 백운교는 16단으로, 구성양식은 규모가 작을 뿐 청운교와 같은 양식이다. 이 다리 밑에도 작은 궁륭형(穹륭形) 통로가 마련되어 있고, 그 양쪽에서 길게 옆으로 뻗은 얇고 넓은 갑석(甲石)의 수법도 청운교에서와 같다. 백운교를 올라서서 자하문(紫霞門)을 지나면 앞에 대웅전(大雄殿)이 나서고, 동서로 두 탑이 서 있다. 약 45°의 경사를 보이는 이 석제(石梯)는 설계에서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서 만들어졌으며, 좋은 화강석을 써서 다듬은 수법도 정교하다. 세부양식에서도 서쪽의 석제(石梯)나 기타 당탑(堂塔)과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석제(石梯)도 서쪽 석제(石梯)와 마찬가지로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주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慶州 佛國寺 金銅毘盧遮那佛坐像) - 국보  제26호

 

경주시 토함산 기슭에 자리잡은 불국사는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 김대성의 발원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삼국유사』에 의하면 김대성은 현세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 석굴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불국사 비로전에 모셔져 있는 높이 1.77m의 이 불상은 진리의 세계를 두루 통솔한다는 의미를 지닌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한 것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기교있게 붙여 놓았으며, 얼굴은 위엄이 있으면서도 자비로운 인상을 풍기고 있다.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입은 옷은 매우 얇게 표현되어 당당한 신체의 굴곡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고 있는 옷주름의 표현은 매우 사실적이다. 손모양은 오른손 검지를 왼손으로 감싸고 있어 비로자나불이 취하는 일반적인 손모양과는 반대로 표현되었다. 이 불상은 탄력 넘치는 양감과 적절한 신체비례 등에서 이상적이면서 세련된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모습을 엿볼 수 있으며,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27호),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 제28호)과 함께 통일신라 3대 금동불상으로 불린다.

 
불국사 비로전(毘盧殿)에 주존불(主尊佛)로 봉안되어 있는 불상이다. 높이 177㎝, 이 상(像)은 불국사 극락전 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27호), 백률사 약사여래입상(국보 제 28호)과 함께 통일신라 3대 금동불의 하나이다. 대좌(臺座)나 광배(光背)는 없어지고 불신(佛身)만 남아 있지만, 육계(肉계)나 나발(螺髮)의 머리카락은 기교있게 만들었다. 상호(相好 : 부처님의 얼굴)는 반달눈썹에 눈은 아래로 내려다보는 듯 반개(半開)하였고, 인중을 뚜렷이 두드러지게 새겨 전체적으로 장중한 인상을 풍긴다. 대의(大衣)는 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 얇게 밀착되어 몸의 굴곡이 자연스럽게 드러나 보이는 당당한 체구의 결가부좌상(結跏趺坐像)이다. 수인(手印)은 오른손이 아래, 왼손이 위로 올라간 지권인(智拳印)으로서 일반적인 지권인과는 반대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예는 증심사 비로사나불좌상(보물 제131호)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불상은 8세기 중엽경의 작품인 석굴암본존불(국보 제24호)의 특징과는 다른 9세기 불상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볼 수 있다.

 

▶경주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慶州 佛國寺 金銅阿彌陀如來坐像) - 국보  제27호


경주시 토함산 기슭에 자리잡은 불국사는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 김대성의 발원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삼국유사』에 의하면 김대성은 현세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 석굴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은 불국사 극락전에 모셔진 높이 1.66m의 불상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기교있게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근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큼직하게 솟아 있다. 원만하고 자비스러운 얼굴은 정면을 향하고 있으며, 눈썹은 반원형이고 콧날은 오똑하다. 신체 표현은 장중하여 건장한 남성의 체구를 연상시키며, 두 무릎은 넓게 퍼져서 매우 안정된 느낌을 준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입은 옷에는 거침없는 주름이 새겨져 있는데, 특히 옷깃 안쪽에서 밖으로 늘어지는 옷 접힘은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어깨 높이로 들어 약간 오므린 왼손은 손바닥을 보이고 있으며, 오른손은 무릎에 올려 놓고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약간 구부리고 있다. 떡 벌어진 어깨, 양감있는 당당한 가슴, 잘록한 허리 등에서 사실적이면서 세련된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모습을 엿볼 수 있으며,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26호),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 제28호)과 함께 통일신라 3대 금동불상으로 불린다.


불국사 극락전(極樂殿)에 주존불(主尊佛)로 봉안되어 있는 불상이다. 높이 166㎝로 이 상(像)은 전체적으로 장중한 모습이며 신체나 옷주름도 비교적 사실적(寫實的)으로 표현하였다. 상호(相好)는 근엄한 인상이 뚜렷하여 통일신라시대 후반기의 불상과 비교되며, 짧은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다. 법의(法衣)는 우견편단(右肩偏袒) 양식이며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두 무릎은 매우 안정된 모습이다. 수인(手印)은 아미타(阿彌陀)의 9품인(九品印) 중에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을 보이며, 양손의 위치에 있어서 좌우가 서로 바뀌어진 것은 국보 제26호 비로자나불좌상에서도 보이는 공통된 점이다. 이 불상은 조성연대가 국보 제26호와 거의 비슷한 800년을 전후한 시기로 추정된다.

 

▶경주 불국사 사리탑(慶州 佛國寺 舍利塔) - 보물  제61호

 

불국사 강당 뒤쪽의 보호각에 보존되어 있는 사리탑으로, 「불국사사적기(佛國寺事蹟記)」에서 말하는 '광학부도(光學浮屠)'가 곧 이 사리탑을 가리킨다는 견해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여래의 사리탑인지 승려의 사리탑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겉모습이 석등과 비슷하게 생긴 사리탑으로, 사리를 모시는 탑신(塔身)을 중심으로 아래는 받침이 되는 기단(基壇)을 두고, 위로는 머리장식을 두었다. 기단은 연꽃잎을 새긴 반원모양의 돌을 위 · 아래에 두고, 그 사이를 북(鼓)모양의 기둥으로 연결하고 있는데 기둥에 새겨진 구름무늬에서 강한 생동감이 묻어난다. 탑신(塔身)은 가운데가 불룩한 원통형으로, 네 곳마다 꽃으로 장식된 기둥모양을 새겨두었다. 기둥에 의해 나뉘어진 4면에는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안쪽으로 움푹 파놓은 후, 그 안에 여래상(如來像)과 보살상(菩薩像)을 돋을새김하여 모셔놓았다. 지붕돌은 추녀끝에서 12각을 이루다가 정상으로 올라가면서 6각으로 줄어든다. 경사면은 완만하며,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일부만 남아있다.

 

평면이 8각인 기본형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를 보여주는 것으로, 화려한 조형과 섬세한 조각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1905년 일본인에 의해 동경의 우에노(上野)공원으로 불법 반출되었다가 1933년에 반환된 것으로, 일제시대 당시 모진 수난을 당한 우리 문화재의 아픈 역사를 잘 말해주고 있다

 

▶경주 불국사 석조(慶州 佛國寺 石槽) - 보물  제1523호


불국사석조는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수조의 형상이 원형인 백제시대의 석조와 달리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형상인 직사각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내·외면에 조각이 있는 점과 다른 직사각형의 석조와는 달리 모서리를 둥글게 한 것이 특이함. 특히 내부 바닥면의 화려한 연화문 조각은 통일신라시대 불교미술의 뛰어난 조형의식과 높은 예술수준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인정된다.

 

백제시대의 석조는 수조부분 형상이 원형이고 통일신라시대 및 그 이후의 석조는 대부분 직사각형인데 불국사석조의 형상도 기본은 직사각형을 이루며 네모서리와 장변의 중앙부에서는 안쪽으로 둥글게 모접기하여 유려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석조의 규격은 길이 262cm, 폭 131cm, 높이 52cm이며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차 좁아져 입면상으로는 사다리꼴 형상을 이루고 있으며 다른 석조에 비해 내·외면에 조식이 있다는 점에서 특이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외부 면에는 중앙부와 상부에 가로로 도드라진 띠를 돌리고 중앙부의 돌림띠 아래로는 장변에 각 6개, 단변에 각 3개씩 모두 18개의 8괄호형 안상(길이 32cm, 높이 7cm)을 조각하였으며, 내부 면에는 바닥 중앙부에 타원형의 커다란 자방형상을 조식하고 이를 중심으로 장변의 좌·우 바닥 면과 측면벽으로 연결하여 단청의 머리초 수법의 연화문을 조각하여 매우 특이한 수법으로 화려하게 조식하였다. 이는 석조에 물을 채우면 연꽃이 피어오르는 듯한 모습을 구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석조의 바닥 중앙에는 지름 약 3.5cm의 출수구가 있다.

 

이와 같이 불국사석조는 일반적인 직사각 형태에 비해 각 모서리를 모접기하여 유려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고, 외부면의 돌림띠와 안상조식 및 내부면의 자방과 연화문 조식수법에 있어서도 독특함과 화려함이 돋보여 신라인의 뛰어난 조형의식과 예술수준을 보여주는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며, 보존상태도 양호하여 보물로서의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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