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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

 

연국 복성공 안자(國 復聖公 顔子)
  동배향(東配享) 제1위(第一位)
공자의 제자로 춘추 말엽 노(魯)나라 사람이다. 성은 안(顔)이고 이름은 회(回)이며 자가 자연(子淵)이기 때문에 안연(顔淵)으로도 일컬어진다. 공자보다 30여세가 적으며, 집안은 청한(淸寒)하였다. 16-7세 때부터 공자를 스승으로 모시고 계속하여 공자의 학습 생활을 따랐으며 종신토록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안회는 공문제자 중에서 공자가 가장 아끼는 제자였고, 사람됨이 총혜(聰慧)롭고 배우기를 좋아하였으며, 내성적인 성격으로 침정(沈靜)한 데다가 엄격하고도 근면하였다. 그는 공자의 제자 가운데 덕행수양(德行修養)면에서도 가장 뛰어난 인물이다. 공자는 제자들을 평가하면서 덕행 면에서 안연을 제일로 지목하고 그의 인(仁)을 높이 평가했다. 또한 안회는 안분지족(安分知足)으로 자기를 지켰고, 예에 어긋나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았으며, 명리(名利)에 담박하여 안빈낙도(安貧樂道)하였고, 자신의 장점과 공로를 자랑하지 않았다.

안회는 스승인 공자를 아버지처럼 존경하고 줄곧 따랐으며 공자의 말에 맹종하여 일언반구의 어김도 없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조사(早死)하여 공자에게 큰 실망을 안겨 주었다. 이처럼 안회는 전적으로 공자의 학설을 신봉하였고 또 조사하였기 때문에 독창적인 의견이 없어 사상, 학술 면에서 후세에 끼친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

동한(東漢) 명제(明帝)15년(72)부터 '72제자'에게 제사했는데 안회의 신위를 모든 제자 중 수위(首位)에 놓았으며, 공자에게 시제(時祭)를 올릴 때도 유독 안회만은 배향하였다고 한다. 당태종 정관 2년(628)에 추존하여 선사(先師)라 하였고, 당 현종 개원 27년(739)에 연공(?公)에 추봉되었으며, 송 진종 대중상부 2년(1009)에 연국공으로 가봉(加封)되었고 다시 원 지순(至順) 원년(1330)에 연국복성공(?國復聖公)으로 가봉되었으며 명 세종 가정 9년(1530)에 복성안자(復聖顔子)로 개칭되었다.
 
성국 종성공 증자(?國宗聖公曾子)
  서배향(西配享) 제1위(第一位)
공자의 제자로 춘추 말엽 노나라 남무성(南武城) 사람이다. 성은 증(曾)이고 이름은 삼(參)이며 자는 자여(子輿)이다. 추존하여 증자(曾子)라고 하였으며 공자보다 46세가 적다. 집안은 몰락한 귀족으로 빈한하였으며, 그의 부친 증점(曾點)도 공자에게서 수학하였다.

공자는 증삼을 노둔하다고 평하였는데 이는 성격이 내성적이고 일을 신중히 처리하였기 때문이다. 그가 학습하고 수양한 것은 주로 '내성(內省)'과 '신독(愼獨)'이다. 즉 『논어』 [학이편]에 "나는 날마다 세 가지로 내 몸을 살핀다."라고 하여 내성을 말하였고 『예기』와 『대학』에 "군자는 반드시 그 혼자 있을 때 삼가야 한다"라고 하여 신독을 말하였다. 그는 유가의 최고 덕목인 인(仁)의 실현을 자신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과제로 여겼기 때문에, 평상시에도 아주 근신하고 신중하게 행동하였으며 결코 자기가 취해야 할 활동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증삼은 특히 효행으로 이름났다. 공자의 제자 중에 효행이 뛰어난 사람으로는 민자건(閔子騫)도 있지만 후세에 끼친 영향은 민자건보다 증자가 훨씬 크다. 그는 효의 전형으로서 어리석을 정도로 몸소 효도를 실천하였는데 『사기』 [중니제자열전]에 의하면 공자는 그를 효도에 능통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효경』은 바로 증자가 지었다고 하였다.

남송때 안회(顔回), 증삼, 자사, 맹자를 사배(四配)로 추존하였는데 후에 다시 안회는 '복성(復聖)'으로, 증삼은 '종성(宗聖)'으로 추존하였다. 당(唐) 고종 총장(總章) 원년(668)에 태자소보(太子少保)에 봉하였다. 당 현종 개원 27년(739)에 성백(?伯)으로 봉하였으며 송 진종 대중상부 2년(1009)에 성후(?侯)로 봉하였고, 정화 원년에 무성후(武城侯)로 개봉하였다. 도종 함순(咸淳) 3년(1267)에 다시 성국공(?國公)으로 봉하였으며, 원 지순 원년(1330)에 성국 종성공으로 봉하였고, 명 세종 가정 9년(1530)에는 종성증자(宗聖曾子)로 개칭하였다. 
 
기국 술성공 자사(沂國 述聖公 子思)
  동배향(東配享) 제2위(第二位)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이자 유가학파의 중요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성은 공(孔) 이름은 급(伋) 자는 자사(子思)로 공자의 적손이다. 대략 주나라 경왕 37년에 태어나서 주나라 위열왕 24년에 졸(卒)한 것으로 전해진다.

자사는 일찍이 증자를 사사하여 그 종전을 얻었다. 때문에 『맹자』 [이루 하]에는 '증자 자사 동도(曾子子思同道)'라고 되어있다. 그의 학술과 주요 사상은 『중용』에 나타나 있는데 그것은 공자의 중용사상을 계승 발전시켜서 성(誠)으로써 핵심적인 철학체계를 세운 것이다. 자사는 사람을 세 부류로 나누어 하나는 생이지지(生而知之)하여 안이행지(安而行之)하는 사람과 학이지지(學而知之)하여 이이행지(利而行之)하는 사람, 그리고 곤이지지(困而知之)하여 면강이행지(勉强而行之)하는 사람으로 분류하였다. 또 자사는 유가의 사회 윤리관을 개괄하여 군신 부자 부부 곤제 붕우의 교(交)를 천하의 달도(達道)라 하였으며 지인용(智仁勇) 세가지를 천하의 달덕(達德)이라 하였다. 정치 사상으로는 천하를 다스리기 위해서 수신(修身), 존현(尊賢), 친친(親親), 경대신(敬大臣), 체군신(體群臣), 자서민(子庶民), 내백공(來百工), 유원인(柔遠人), 회제후(懷諸侯)의 구경을 제시하였다.

송나라 휘종 숭녕 원년(1102)에 기수후(沂水侯)로 봉해졌고 대관 2년(1108)에 종사되었으며, 이종 단평 2년(1235)에 '십철(十哲)'로 올려서 배향되었다가 도종 함순 3년(1267)에 기국공(沂國公)으로 봉해졌고, 배향을 승격시켜 원 지순 원년(1330)에 기국술성공(沂國述聖公)으로 추증(追贈)되었는데 명 세종 가정 9년(1530)에 술성자사자(述聖子思子)로 개칭 되었다.
 
추국 아성공 맹자(鄒國 亞聖公 孟子, BC 372 - 289)
  서배향(西配享) 제2위(第二位)
전국시대 사상가이자 정치가, 교육가로 유가학파의 대표적인 사람이다. 성은 맹(孟), 이름이 가(軻)이며, 자는 자거(子車) 또는 자여(子輿)로 노나라 추읍(鄒邑) 사람이다. 아버지는 맹손격(孟孫激)이고 어머니는 장씨라고 하나 선계가 분명치 않다.

그가 40세를 전후했을 때 추목공은 그를 발탁하였다. 그러나 당시 추의 정치는 극히 혼란하여 맹자는 자기 나라에서 자신의 정치적 포부를 펼칠 수 없음을 부끄럽게 생각하고는 곧 추를 떠났다. 그리고 그는 일생동안 왕도정치로써 제, 량, 노, 추, 등, 설, 송 등의 나라를 두루 다니면서 제후들에게 유세하였고, 제선왕의 공경이 되기도 하였다.

맹자가 평생 목표로 삼았던 것은 사상 면에서는 유학을 드높이는 것이었고 정치면에서는 왕도정치의 실천 곧 유가의 이상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그의 사상 면에서 두드러진 점은 성선설(性善說)이다. 『맹자』 7장은 이러한 성선설의 정신으로 일관되어있고 그 중에서도 특히 [고자]와 [진심]두 편에는 이러한 이론이 여러 군데 등장한다.

또 그는 인성 수양 이론이라 할 수 있는 네 가지 항목, 즉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을 주장하였다. 정치사상은 왕도정치로 집약된다. '백성은 중요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고 국군(國君)은 대단치 않다'는 것이 맹자 정치론의 핵심이다. 이러한 맹자의 주장은 당시 대다수의 평민들이 전쟁과 학정에 무참히 시달리고 있는데 반하여 군주를 위시한 극소수의 특권층만이 사치와 횡포를 자행하는 것을 목격한 데서 생겨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위정자는 국민에 대하여 언제나 정치상의 책임을 져야 하므로, 올바른 정치가 행해지지 않을 때 임금은 그 자격을 상실하게 되고 따라서 그 자리를 내놓고 물러나야 하며, 걸주(桀紂)같이 포악 무도할 경우에는 죽임을 당하기까지 한다는 것이 맹자의 견해이다.

송나라 신종 원풍 6년(1083)에 추국공으로 봉해졌고 7년에 지성(至聖)의 성묘(聖廟)에 배향되었다. 원 지순 원년(1330)에 추국아성공(鄒國亞聖公)으로 추증되었으며 명 세종 가정 9년(1530)에 아성맹자(亞聖孟子)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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